Deakaksa
   

bulsang

참 나를 찾아서

어려운 처지에 처해 고민하고 괴로워할 때 그것을 구해 줄 사람을 만남녀 얼마나 기쁜가? 어두운 밤에 피곤한몸으로 힘든 길을 갈 때 함께 갈 길동무를 만나면 얼마나 고마운가? 그렇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든 이를 위로하고 가치에 눈 뜰 때 삶이 변한다. 따라서 인생관과 가치관이 정립되었을 때 인생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 듯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겐 생사의 밤길은 멀고도 멀어라. 《법구경》
사람이 전생의 업을 다하고 악도에서 벗어나더라도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려우며,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부처님 법을 만나기가 어려우며, 부처님 법을 만났더라도 수행자를 만나기 어렵고, 수행자를 만났더라도 신심을 내기 어렵다. 《사십이장경》
우리의 삶은 올바른 진리의 길에 들어설 주 모르고 감정에 욕망에 이끌려 마치 뱀의 꼬리가 앞장을 서서 길을 가려는 것과 같이 가시덩굴에 들어가고 불 속에도 들어가고 결국에는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되는 격이다. 즉 우리들이 불타는 집과도 같은 이 세상을 윤회하는 것은 끝없는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부처님께서 어느날 숲 속에 있는 한 나무 아래에서 좌선을 하고 계셨다. 아때 젊은이들이 숲속에서 여기저기 무엇인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나무아래 조용히 앉아 있는 부처님을 보고 그들이 다급하게 물었다. "한 여자가 도망가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까?" 사연인즉, 그들은 이 지역에 사는 지체있는 집안의 자제들인데, 오십 명이 저마다 자기 아내를 데리고 숲에 놀이를 왔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의 미혼자만은 기생을 데리고 왔었는데, 모두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그 기생은 여러 사람의 옷과 값진 물건을 가지고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그 여인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위와 같은 사정을 듣고 부처님은 그들에게 물으셨다.

"젊은이들이여, 달아난 여인을 찾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놀이에만 맢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여인을 찾아 헤매던 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럼, 다들 거기 앉아라. 내가 이제 그대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찾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이리하여 그 젊은이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모두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 《사분율 제 32권》
이 젊은 이들은 자신이 더 중요함을 곧 깨달아 출가했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탐욕의 세계로 달려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항상 탐욕을 버리라고 설하시며, 부처님께서도 '왕자의 지위를 문틈에 비치는 먼지처럼 보고, 금이나 옥 따위의 보배를 깨어진 기왓장처럼 보며, 비단옷을 헌 누더기 같이 보고, 삼천대천세계를 한 알의 겨자씨 같이 보라《사십이장경》
'궁권을 버리고 출가하여 위대한 깨달음을 얻으신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세속의 탐욕을 벗어났음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늘 당신은 '길을 가리키는 사람'이라 말씀하였다. 부처님을 만나는 사람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지혜와 평화의 길을 가르쳐 주셨다. 즉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깨달음과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몸소 가시며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그렇지만 깨달음을 이루고, 못이루고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다.

고려시대 야운 스님은 당신의 수행을 살피는 글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이 부처님 법안에서 도를 이루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아직도 고해에서 헤매고 있는가. 그대는 시작 없는 옛적부터 이 생에 이르도록 깨달음을 등지고 속징에 묻혀 어리석은 생각에 빠져 있구나. 항상 악업을 지어 삼악도에 떨어지고 착한 일을 하지 않으니 생사의 바다에 빠진 것이 아닌가.《자경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