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kaksa
   

bulsang

화엄사상

(1) 화엄사상의 위치

화엄사상은『화엄경(華嚴經)』을 소의로 해서 성립ㆍ전개된 사상이며『화엄경』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해서 불교사상사에서 차지하는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

첫째, 화엄경은 시간상으로 보면 붓다가 성도하신 후 2ㆍ7일에 설한 경이며, 중생들의 근기를 고려하지 않고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설한 해인삼매정중설(海印三昧定中說) 이라고 하는 점이다.

둘째, 공간상에서 보면 양적으로 방대하여 80권이나 된다.

셋째, 설법상에서 보면 설주(說主)와 설처(說處)가 다양하다. 붓다는 해인삼매에들어 광명만을 놓고 있고, 붓다를 대신해서 여러 보살들이 법(法)을 설하고 있다. 설법의 장소를 보면 지상ㆍ천상 그리고 다시 지상의 순서로 자리를 옮기면서 7 곳에서 설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넷째, 설법의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 경의 이름에서만 보면 부처(佛)만을 설하는 경인 듯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불신(佛身)사상ㆍ보살(菩薩)사상ㆍ유심(唯心)사상ㆍ연기(緣起) 사상ㆍ정토(淨土)사상 등이 고루 설해지고 있다. 그러므로『화엄경』을 여러 사상의 보고(寶庫)라고도 한다.

다섯째,『화엄경』을 시간상에서 보면 성도 후 2ㆍ7일 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붓다의 음성경(音聲經)이었다. 그 음성경이 제자들의 입과 입을 통해 전해지던 구전경(口傳經)의 시대를 거쳐 문자화되어 게송경(偈頌經)으로 나타난 것은 서기를 전후한 시대였다.

이 시대를 우리는 초기 대승불교시대라고 한다. 반야경(般若經)ㆍ법화경(法華經)ㆍ 무량수경(無量壽經) 등 소위 초기 대승경전들과 함께 문자화되어 나타난『화엄경』은 소승불교와는 그 사상성을 달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소승불교사상의 중심과제가 인간 고(苦)의 원인규명과 그 고에서의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화엄경의 중심사상(대승불교사상)은 인간 석가모니불에 대비되는 영원불멸의 부처가 무엇이며, 어떻게하면 그 부처가 될 수 있을까라고 하는 것인데 그 해답으로써 깨달음〔覺〕과 실천행〔行〕이 원만한 보살의 원행(願行)이 제시되고 있다.

(2) 화엄경의 개요

① 경의 이름(經名)

화엄경이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약명(略名)이고 산스크리트어[梵語]로는 Mahvaiplya-buddha-gaa-vyha-stra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大)는 소(小)에 대한 상대적인 대(大)가 아니라 절대적인 대(大), 상대가 끊어진 극대(極大)를 말한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절대(絶對)의「大」라고 할 수 있다. 방광(方廣)이란「넓다」는 뜻인데, 특히 공간적으로「넓다」는 뜻이다. 따라서「대방광(大方廣)」이란 크고 넓다는 뜻으로 붓다를 수식하는 형용사다. 그러므로 대방광불(大方廣佛)이란 한량없이 크고 넓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붓다를 말한다. 그 붓다는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이란 산스크리트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중국인들이 그 소리에 따라 적은 것인데 광명변조(光明遍照)라는 뜻이다.

『60화엄경』의 노사나불품(盧舍那佛品)에서는 이 소식을 불신충만제법계(佛身充滿諸法界)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화엄(華嚴)이란 잡화엄식(雜華嚴飾)에서 나온 말이다. 화엄을 산스크리트어로는 Gaa-vyha라고하는데, Gaa란 잡화(雜華)라는 뜻이고, vyha란 엄식(嚴飾)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화엄이란 잡화엄식(雜華嚴飾)이라는 말 그대로 가지 가지의 꽃을 가지고 장엄한다는 뜻이다.

『화엄경』「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에서는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의 적멸도량에서 정각을 이루셨는데, 그 곳은 금강(金剛)으로 꾸며져 있고 많은 보배와 가지 가지의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화엄경』을 잡화경(雜華經)이라고도 하는 데, 잡화(雜華)라는 말이 바로 위의 경구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요약해서 말하면『대방광불화엄경』은 광대무변하게 우주에 편만해 계시는 붓다의 만덕(萬德)과 가지 가지의 꽃으로 장엄된 진리의 세계를 설하고 있는 경이라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법화경(法華經)과 화엄경을 들 수 있는데, 법화경이 법(法)을 설하는 경전이라면 화엄경은 불(佛)을 설하는 경이라고 할 수 있다. 불(佛)을 설(說)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전지전능하며 무소부주(無所不住)한 붓다, 즉 비로자나불의 불가사의한 힘(不思議神力)과 불가사의한 세계(世界)와 불가사의한 작용(不思議用)과 불가사의한 공덕(不思議功德) 등을 설하는 경(經)이라는 뜻이다.

위에서 말한 비로자나불의 신력(神力)과 세계(世界)와 작용(作用)과 공덕(功德)의 4가지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 중생들은 결코 헤아려 알 수 없다고 한다. 그 소식을 낙업광명천왕(樂業光明天王)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참으로 깊고 깊어 생각하기조차 어려워라. 깨닫지 못한 중생들 어찌 헤아려 알 수 있을까?”

신라의 의상(義湘)스님도 부처님(法身佛)의 세계는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경계(智所知非餘境)며, 10부처님(十佛)이나 보현보살(普賢菩薩)과 같은 대인(大人)들만이 알 수 있는 경계이지, 중생들이 감히 짐작해서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했다. 불(佛)을 설한다는 두번째 뜻은 앞에서 말한 불가사의한 신력과 세계와 작용과 공덕을 갖춘 비로자나불이 되는 길(道)에 대해 설한 경(經)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무명에 덮히어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중생이 한 걸음 두 걸음 닦아 나가 52단계를 거쳐 마침내 부처가 되는 과정, 즉 보살의 길(菩薩道)을 설명하는 경이라는 뜻이다.

② 경이 설해진 때

화엄경은 언제쯤 설해 졌으며 설해진 장소는 어디일까. 성도후 붓다에 의해서 직접 설해졌을까. 그렇다면 (大本)화엄경은 왜 붓다가 직접 설하지 않고 여러 보살들이 대신 설하는 형태로 되어 있을까라고 하는 등의 물음에 대한 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화엄경의 설시(說時)에 대해서『60화엄경』의 「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과 「십지품(十地品)」에서는 “시성정각(始成正覺)”의 때(時)로,「이세간품(離世間品)」에서는 “등정각(成等正覺)”의 때라고 전하고 있다. 즉, 화엄경은 붓다가 “처음 정각을 이루신 때 ” 혹은 “등정각을 이루신 때”에 설해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세친(世親: 400~480)의『십지경론(十地經論)』에 인용된『십지경(十地經)』이나 시라달마(尸羅達摩)가 번역한『십지경』에서는 이 경의 설시(說時)를 “성도미구2ㆍ7일 (成道未久二七日)”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십지경』은 붓다가 성도한 후 오래지 않은 제 2ㆍ7일에 설했다는 뜻이다.

성도 후 처음 7일은 법락(法樂)을 자수용(自受用)하시고, 제 2ㆍ7일에 이 경(經)을 설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말하는『십지경』은 대본 화엄경의「십지품」에 해당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중국 화엄종의 제 3조로 불리우는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은 화엄경을 “해인삼매정중설(海印三昧定中說)”이라 말하고 있다. 즉, 화엄경은 붓다께서 성도하신 후, 해인삼매 속에서 중생의 수준에 관계없이 깨달으신 진리의 내용을 그대로 설하신 것이라고 했다.

천태대사 지의(智?: 538~597)는 5시 8교판(五時八敎判)에서 제 1에 화엄시(華嚴時)를 두고 있다. 즉, 화엄경은 붓다가 성도한 후 제 3ㆍ7일에 설하신 경이라고하는 뜻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화엄경은 붓다가 성도하신 직후, 혹은 제 2ㆍ7일에, 혹은 제 3ㆍ7일에 설하신 경(經)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대본 화엄경의 설시(說時)를 성도 직후, 혹은 제 2ㆍ7일 혹은 제 3ㆍ7일로 보는 데는 다소의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불교경전은 음성경(音聲經)과 송경(誦經)의 과정을 거쳐 문자경(文字經)으로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음성경이란 붓다께서 설하신 소리 경을 말하며, 송경이란 제자들에 의해서 입에서 입으로 독송되어 오던 구전경(口傳經)을 말하며, 문자경이란 체계화된 형태의 문자로 기록된 경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경전들은 대개 이와 같은 3단계를 거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화엄경』의 완본(完本) 즉 대본경(大本經)에는 60화엄ㆍ80화엄ㆍ장역화엄(藏譯華嚴)의 3가지가 있는데, 이들 화엄경은 처음부터 하나의 단일 경으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단행본의 경전들을 한데 모아서 편찬한 것이다.

예를들어『60화엄경』의「십지품」은『십지경(Dasabhumika-stra)』에,「명호품(名品)」 과「광명각품(光明覺品)」은『도사경』에,「입법계품」은『간다뷰-하(Gaavyha)』에, 「성기품」은『여래흥현경(如來興顯經)』에 해당한다. 이들 경전들은 일찍이 인도나 중앙아시아에서 단행본으로 유행하고 있었는데 대본화엄경의 경우 편찬자의 구상에 따라 화엄경의 각 품으로 편입되었던 것이다. 이들 경전을 역경사상(譯經史上)에서 보면 2세기 초에는 지루가참(支婁迦讖)에의해서 이미『도사경』이 번역되어 있었고, 『간다뷰-하(Ga??havy?ha)』와『십지경(十地經)』은 3세기 중엽 이전에 이미 성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용수(龍樹:150-250년경)의『대지도론(大智度論)』과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는 이 2경(經)이 수회에 걸쳐 각각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본화엄경은 노산(盧山) 혜원(慧遠: 334~416)의 제자인 지법령(支法領)이 392년에 서역(西域)에서 그 산스크리트어 원전을 구해서 418년에 중국에 가져 온 사실을 보면 400년경 이전에 이미 성립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산스크리트어 원전의 화엄경을 지법령이 418년에 중국에 가지고 왔고,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가 중심이 되어 421년에 번역을 마치니『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60권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마가다국의 붓다가야에서 성도한 후 제 2ㆍ7일에 설하여진 단행본의 화엄경전류(華嚴經典類)들이 이상과 같은 과정을 거쳐 421년에 대본(大本) 화엄경으로 성립되게 되었다.

③ 설주(說主)와 설처(說處)

화엄경은 그 구성상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여기서 편의상『60화엄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이 경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불은 설법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회(各會)마다 붓다는 미간백호(眉間白毫) 등 신체의 각 부위에서 광명(光明)만을 놓고 있고, 붓다를 대신하여 여러 보살들이 법(法)을 설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2품(二品)만은 예외다. 제25「심왕보살문아승지품」과 제30「불소상광명공덕품」만은 보살이 질문을 하고 붓다가 그 답을 하고 있다.

둘째, 설법의 장소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지상의 적멸도량(寂滅道場)을 위시해서 천상의 도솔천(兜率天)에 이르기까지 그 장소는 다양한데, 7 곳에서 8 번의 설법을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보광법당(普光法堂)에서는 2번의 설법이 있게 된다.

셋째, 설법의 장소(說處)가 철저하게 보살의 수행 계위(階位)를 염두에 두고 구상되었다는 점이다. 화엄교학에서는 보살의 수행 계위를 보통 52단계로 나누고 있다.

이 경의 서분(序分)인 제1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를 빼놓고 제2 보광법당회(普光法堂會)로 부터 제8 서다원림회(誓多園林會)까지에 보살의 52계위를 배당시키고 있다. 여기서 이 경의 설처(說處)와 설주(說主)를『60화엄』에 의해서 살펴 보면, 그 설처는 제1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ㆍ제2 보광법당회(普光法堂會)ㆍ제3 도리천궁회(利天宮會)ㆍ제4 야마천궁회(夜摩天宮會)ㆍ제5 도솔천궁회(兜率天宮會)ㆍ 제6 타화천궁회(他化天宮會)ㆍ제7 중회보광법당회(重會普光法堂會)ㆍ 제8 서다원림회(誓多園林會)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설주는 이 설처의 순서대로 보현보살(普賢菩薩)ㆍ문수보살(文殊菩薩)ㆍ 법혜보살(法慧菩薩)ㆍ공덕림보살(功德林菩薩)ㆍ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ㆍ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ㆍ보현보살(普賢菩薩)ㆍ문수, 보현보살로 되어 있다.

④ 경의 종류

현존하는 화엄경에는『60화엄경』ㆍ『80화엄경』그리고 티벳어역인『장역화엄(藏譯華嚴)』등 3가지 종류의 완전본과 화엄경의 일부분인 입법계품(入法界品)만을 번역한『40화엄경』이 있다. 이들 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 60화엄경』: 위에서 말한 4가지『화엄경』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 359~429)에 의해서 번역된『60화엄경』이다.『60화엄경』의 원본이 처음 발견된 것은 현재 중국의 화전현(和田縣)이다. 현재의 화전현은 중국 서북부의 신강성(新彊省) 자치지구(自治地區)에 속해 있다.

옛날에는 이곳을 우전(于?: Ho-tan)이라고 불렀는데 1959년에 화전현으로 개칭했다. 법현(法顯: 339~420)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곳 우전은 옛날부터 불법이 크게 유행해서 스님들과 일반인들은 물론 국왕까지도 불교를 신봉해서 6재일(六齋日)을 받들어 지키고, 1년에 한번씩 행상(行象: 붓다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을 거행했다고 한다. 60화엄의「후기(後記)」,『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권9,『화엄경수현기(華嚴經搜玄記)』 권1 등에 의하면 그와 같이 불교가 성행하던 우전(于?)에 한 사람의 중국인 구법자가 찾아왔다. 지법령(支法領: 생몰연대 미상)이었다. 그는 우전국(于?國)에 머무르면서 이 나라의 동남쪽 깊은 산에 많은 대승경전(大乘經典)이 비밀리에 숨겨져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국왕에게 간청해서『화엄경』의 전분(前分)「3만 6천게(三萬六千偈」의 산스크리트어 본[梵本]을 장안(長安)으로 가져 왔다.

화엄경「3만 6천게」를 장안에 가져오기는 했으나, 그것을 중국어로 번역할 사람이 없어 고민하던 중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 Buddhabhadra 359~429) 즉 각현(覺賢)을 만나게 되었다. 각현이 장안에 온 것은 서기 406~7년 경이었는데 그 때 장안에는 401년에 이미 들어 와 있던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하나의 교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청정한 계율 생활을 하며 선관(禪觀)을 닦고있던 수행자 각현은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궁녀들의 환대 속에 지내던 구마라집 내지 그 교단과 마찰이 생겼고, 그러므로 해서 장안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추방당하게 되었다. 장안에서 추방당한 각현(覺賢)과 그 제자들은 411년 노산(盧山) 혜원(慧遠: 334~416)을 찾아가 그 곳에서 1년 정도 머무르면서 선경(禪經)을 번역하다가 413년 2월 동진(東晋)의 수도 건강(建康)에 있는 도량사(道場寺)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때 우전(于?)에서『화엄경』 산스크리트어 본(本)을 가지고 건강에 와있던 지법령(支法領)은 각현을 찾아가『화엄경』 의 번역을 부탁하게 되었다.

각현은 동진의 강희(康熙) 14년(418) 3월 10일 번역을 시작해서 원희(元熙) 2년(420) 6월 10일에 마치니 2년 3개월에 걸쳐 이루어진 대작업이었다. 번역본과 산스크리트어본을 다시 대조해서 교정작업을 완전히 끝낸 것은 영초(永初) 2년(421) 12월 28일이었다. 이상과 같은 과정을 거쳐 각현에 의해 번역된『화엄경』은 60권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60화엄이라고 부르며, 동진때 번역되었기 때문에「진역(晋譯)」이라 부르기도 하며, 그후 새로 번역된 신역(新譯)에 대한 대칭으로「구역(?譯)」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60화엄경』은 7처(處) 8회(會) 34품(品)으로 되어 있다.

㉯『80화엄경』: 당(唐)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는 대승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화엄경』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화엄경』의 완전한 산스크리트어본과 그것을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고 있던 중 마침 우전국(于?國)의 실차난타(實叉難陀: Siksananda 652~710) 즉 학희(學喜)가 화엄경 산스크리어본 4만 5천 송(頌)을 가지고 장안(長安)에 왔다. 학희(學喜)는 695년에 대편공사(大遍空寺)에서 번역을 시작해서 699년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마치니, 그때 보리유지(菩提流志)와 의정(義淨)은 산스크리트어본을 읽고 현수법장(賢首法藏)은 그것을 필사했다. 번역이 끝나자 측천무후는 친히 그 서문을 지으니 현재 이 경의 첫머리에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60화엄』을 수정 보완해서 80권본으로 만드니, 이것을『80화엄』이라 부르며, 당대(唐代)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경(唐經)이라 부르기도 하고, 구역(?譯)에 대한 대칭으로 신역(新譯)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신역은 구역과 비교해 보면 문장이 부드럽고 내용도 구역이 8회(會) 34품(品)인 데 비해 9회(會) 39품(品)으로써 보다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40화엄경』: 이 경은 완전본이 아니라 화엄경의 일부분인 입법계품(入法界品)만을 떼어내어 번역한 부분경(部分經)이다. 이 경은 남천축(南天竺) 오다국(烏茶國)의 사자왕(師子王)이 화엄경의 산스크리트어본을 당(唐)의 덕종(德宗)에게 보낸 것을 반야(般若: Praj??)삼장이 798년에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화엄경 대본(大本)의 최후 부분인「입법계품(入法界品)」만을 보완수정한 것으로써 「입불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入不可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 본래의 이름이다. 신역 화엄경보다도 약 100여년쯤 후에 번역된 이『40화엄경』에 반야(般若)가 보현(普賢)의 10종대원(十種大願)과 서방 정토사상(淨土思想)적인 내용을 첨가한 것은 『화엄경』의 신앙성과 연결시켜 볼 때 그 의의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