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kaksa
   

bulsang

정토사상

(1). 정토사상이란 무엇인가

인도에서 비롯된 대승불교는 그대로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정착하였으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사상조류의 하나가 바로 정토사상이다. 한국불교에 있어서는 원효 이래로 신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신앙적으로도, 교학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사상적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밀교와 선종(禪宗)이 급진적인 발전을 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자 정토사상은 후퇴하게 되었고, 주술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정토사상의 기원에 대하여는 많은 부분이 해명되지 않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1883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막스ㆍ뮐러교수와 난조오봉유유(南條文雄)박사의 공동연구의 성과로서 무량수경(無量壽經)과 아미타경(阿彌陀經)의 산스크리트 원전이 간행되었으며, 이것은 정토사상 연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였다. 근래에는 1970년에 동경대학에서 후지따고오따쯔(藤田宏達)박사에 의해서, 원시정토사상의 연구(原始淨土思想の 硏究)가 출판됨으로 인해서, 상당부분이 밝혀지게 되었다.

불교에서 정토사상이 구체적으로 형태를 갖추어서 드러난 것은 대승불교가 흥기한 시대이며, 그것은 정토계경전군(淨土系經典群)이 편찬됨으로서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정토사상>, <정토계 경전군>이라고 하는 것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극락정토(極樂淨土)에 관한 사상이나 경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정토(淨土)라고 하는 용어는 대승불교 일반에서 쓰이는 술어이며,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한정해서 쓰이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토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불국토(佛國土)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이 어느 틈에 아미타불의 극락 국토만을 정토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것은 인도의 용수(龍樹), 세친(世親)과 중국의 담란(曇鸞), 도작(道綽), 선도(道綽), 선도(善導) 등의 대사상가들과, 구마라집(鳩摩羅什), 현장(玄?) 등의 역경의 거장들, 신라의 원효, 경흥(憬興), 의적(義寂), 일본의 법연(法然),친란(親鸞) 등의, 저마다의 지역과 시대를 주도했던 대사상가들에 의해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가장 뛰어난 대승불국토(大乘佛國土)로 지칭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로 거의 모든 대승경전에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언급되고 있으며, 불교의 궁극적 목표가 왕생극락에 있다고 결론짓고 있는 것은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토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용어는, <극락>과 <아미타불>과 <본원(本願)>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 극락정토에 <왕생(往生)>하는 것이 정토신앙의 요체이다. 왕생은, 아미타불의 본원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바로 부처의 본질인 중생을 구제하지 않을 수 없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지혜와 자비가,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을 통해서 중생에게 회향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무아미타불>은 본원이라고 하는 약속을 통해 중생에게 베풀어지는 귀한 선물이기도 하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란 아미타불에게 귀의한다는 말이다. 산스크리트로는 2 가지로 표현된다.

Namo-Amitbha = Namas + a + mita + bha Namo-Amityus = Namas + a + mita + yus Namas 는 귀의한다는 말이며, a 는 부정의 의미를 지닌 접두사이며, mita 는 헤아린다 [잰다]는 말이다. bha 는 광명(光明)이며, yus 는 생명[수명,壽命]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헤아릴 수 없는 광명에 귀의합니다>ㆍ <헤아릴 수 없는 생명에 귀의합니다>라고 하는 말이다.

무한광명(無限光明)[=무량광(無量光)]에 귀의하고, 무한생명(無限生命)[=무량수(無量壽)]에 귀의한다고 하는 말은, 다르마[法,dharma]에 귀의하는 것이며,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구의 삼업(身口意 三業)을 총동원하여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하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다.

그것을 염불(念佛)이라고 한다. 무량수경에서는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불불상념(佛佛相念)>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불(佛)과 불(佛)이 서로 염(念)한다”라는 것은 “부처가 염불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미타삼매(彌陀三昧)에 들어 무량수경(無量壽經)을 설하셨으며, 무한광명과 하나가 되고, 무한생명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진리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 왕생극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욕망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으며, 순수가치만이 존재하며, 순수신앙의 세계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토사상의 창으로 불교를 볼 때에, 불교란 염불인 것이다. 나무아미타불만이 불교인 것이다.

(2). 정토사상의 소의경전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연구되어 온 경전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다. 정토삼부경이란, 정토경전(淨土經典) 가운데 가장 중요한 3 가지 경전을 통틀어 말한 것으로서, 강승개(康僧鎧)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2권 (大經, 또는 魏譯이라고도 한다)ㆍ강량야사(畺良耶舍)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1권(觀經이라고도 한다)ㆍ구마라집역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1권(小經이라고도 한다)을 말한다.

1) 무량수경(無量壽經)

무량수경에는 옛날부터 5존7결(五存七缺)이라고 말하여지고 있으며, 모두 12번의 번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로 12 번의 번역이 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오존(五存), 즉 12번의 번역 가운데서 현재 남아있는 5종의 번역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불설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도경(佛說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2권. 일반적으로 대아미타경(大阿彌陀經)이라고 불리어진다. 후한(後漢)의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번역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222년, 혹은 223-228, 또는 253년에 번역되었다.

②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 4권

평등각경(平等覺經)?이라고 약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후한(後漢)의 지루가참이 번역하였다고도 하며, 위(魏)나라의 백연(帛延)이 번역했다는 설도 있으며, 서진(西晉)의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했다는 설도 있다. 258년경에 번역되었다.

③?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2권

대경(大經), 혹은 위역(魏譯)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중국ㆍ한국ㆍ일본에서 가장 많이 유포된 경전이며, 일반적으로 무량수경(無量壽經)이라고 할 때에는 이 경전을 가리킨다. 중국, 한국, 일본 사상가들, 거의 모두가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정토사상을 피력하였으며, 정토신앙을 고취시켰다. 위(魏)나라의 강승개(康僧鎧)가 252년에 번역한 것으로 전하여진다. 그러나 근래의 연구 보고에서는 조심스럽게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覺賢)와 유송(劉宋)의 보운(寶雲)의 공동 번역이 아닌가 하고 추정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421년에 번역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서진(西晉)의 축법호가 308년에 번역했다고 하는 설도 있다.

④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2권

대보적경(大寶積經)권 17ㆍ18, 줄여서 여래회(如來會)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나라의 보리류지(菩提流支)가 706년에서 713년에 걸쳐서 번역하였다.

⑤대무량수장엄경(大無量壽莊嚴經) 3권

송(宋)나라의 법현(法賢)이 991년에 번역하였다. <무량수경>의 산스크리트 원전은 이제까지 50 부 이상의 사본(寫本)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다섯 종의 원전이 간행되었다. 그것은 모두 네팔 사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원전과 한역된 원전을 비교하여 대조해 보면, 한역 가운데에서는 무량수경여래회(無量壽經如來會)와 가장 가깝다. 한편 티베트말로 된 번역 본도 티베트 대장경가운데에 수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8 세기초에 번역된 것이며, 산스크리트 원전과 거의 내용이 같다.

<무량수경>은 정토사상의 모든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유포된 위(魏)나라에서 번역한 무량수경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무량수경은 상ㆍ하 양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은 여래정토(如來淨土)의 인과(因果)를 설하고 있으며, 하권은 중생왕생(衆生往生), 즉 중생들이 극락에 왕생하는 인과를 설하고 있다. 여래정토의 원인[因]은 48원이며, 그 결과[果]는 극락정토이다. 중생이 극락에 태어날 수 있는 원인은 염불이며, 염불의 결과는 왕생극락이다. 이것은 신라의 원효와 경흥(憬興)대사의 주석서에 잘 드러나 있으며, 이후에 이어진 한국ㆍ중국ㆍ일본의 정토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무량수경은 마가다국의 교외에 있는 영취산(靈鷲山)에서 많은 장노격(長老格)의 큰 제자들과 보현,문수(普賢,文殊) 등의 대보살들을 위시한 많은 대중 앞에서 아난다(阿難)존자의 물음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설하여졌다. 그 중심사상은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에 있다. 구원(久遠)의 과거에 정광불(錠光佛)이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한없는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에 들게 한 연후에 조용히 열반에 드시었다. 이어서 53불이 차례로 출현하시어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드시었다. 마지막으로 출현하신 부처님이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이었다. 이때에 한 국왕이 모든 명예와 재산을 버리고 출가하였으니, 그가 바로 법장(法藏)비구이다. 이 경(經)에서는 54불이 출현하지만, 다른 번역본들에 의하면 반드시 일정하지만은 않다. 혹은 34불이 출현하기도 하며, 많게는 81불이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제불(諸佛)의 숫자가 아니라 그 내용이다.

영원의 옛날, 태초로부터 오랜 시간을 걸쳐서 수많은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진리 그 자체의 드러남이다. 진리 그자체의 드러남은 마치 헤아릴 수 없이 엄청난 물을 머금은 샘이 저 깊은 산속 골짜기에서부터 시작되면서, 계속하여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자비심으로 충만한 엄청난 힘(如來의 위신력)으로 능동적으로 온 누리에 작용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과거의 수많은 부처님들이 불불상념(佛佛相念)하여 석존(釋尊=샤카무니)의 배후에서 다르마의 근거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석존을 통하여 다르마가 시방삼세의 모든 중생들에게 연설되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설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불상념의 근거는 본원에 있는 것이다.

법장 비구는 세자재왕 여래를 통하여 210 억의 불국토의 장엄을 관찰하였으며, 오겁사유(五劫思惟)를 거친 연후에 48원(願)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중생을 향한 약속이며, 그 약속은 아미타불의 성불이란 형태로 이행되었다. 그리고 극락정토는 완성되었다. 제불보살(諸佛菩薩)의 본원을 관찰해 보면, 일관되게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정신을 밑바닥에 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모든 부처님들[諸佛]이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하화중생이다. 이제 아미타불이 극락정토를 준비하신 것도, 오로지 정토에 중생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다. 법장(法藏)비구는 전념염불(專念念佛)하는 사람들을 남김없이 모두 정토에 맞이하겠다고 약속하였으며, 이 약속(願)을 성취하기 위하여 조재영겁(兆載永劫=매우 오랜 세월)에 걸친 수행을 쌓았으며, 수행의 공덕을 모두 중생들에게 회향하신 것이다. 우리들은 5탁악세(五濁惡世)에 태어나 말법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미타불의 서원(誓願)에 의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미타불은 스스로 아건초세원(我建超世願)이라 선언하셨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거듭 거듭 약속을 확인하면서 본원을 세운 붓다는 달리 찾을 수 없다. 모든 중생이 그 이름을 들어 지심(至心)신요(信樂) 욕생(欲生)의 타력삼신(他力三信)을 얻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하거나, 그렇게 10번 하는 사람이 극락정토에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붓다가 되지 않으리(제18원)라고 굳은 약속을 했으며, 그 약속은 성취되었다. 또 경(經) 가운데에, 아미타불의 본원력(本願力)은, 중생이 그 이름을 들어 왕생하고자 바란다면, 누구든지 모두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스스로 불퇴전(不退轉)에 이르게 하리라하고 또 강조하고 있지만, 이것은 본원력의 불가사의함을 들어내 보이는 말이다.

하권의 후반부에서는 설법의 상대자[對告衆=대고중]가 미륵(彌勒)으로 바뀌면서 이 경의 유통(流通)을 부촉하신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저 아미타불의 명호(名號=이름)를 들어서 환희용약하며 일념으로 염불하는 사람은 큰 이익을 얻게 되리라. 이들은 무상(無上)의 공덕을 충분히 갖추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하고 설해지고 있지만, 이것은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미륵보살에게 이 경전을 부촉하시는 자리에서까지 염불의 공덕이 매우 뛰어남을 명백하게 들어내고 있음을 알게 해 주는 것이다.

2)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관무량수경은 흔히 왕사성의 비극이라고도 불리어진다. 이 경은 그 첫 부분에 송(宋)의 원가연중(元嘉年中)에 강량야사(畺良耶舍)가 번역하다라고 되어 있다. 송(宋)이라고 하는 나라는 중국 역사상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수, 당, 5대(五代), 그 다음에 일어 난 송 나라가 있고, 또 하나는 그 보다도 훨씬 이전 남북조 시대에 생긴, 유 무제(劉 武帝)가 양자강 남쪽 건업(建業)에 도읍을 정하고 세운 송 나라가 있다. 이것을 유송(劉宋)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를 가리킨다. 그 시대에 서역에서 강량야사라고 하는 사람이 송나라를 찾아 왔으며, 종남산(終南山)의 도림정사(道林精舍)에 살면서 이 경을 번역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인도에서 전래된 경전들은 거의 2 가지 이상의 이역(異譯)이 있지만, 이 관무량수경은 1 가지 번역밖에 없다. 물론 인도말로 된 원전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경은 역경사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경이다.

관무량수경이라는 제목은, 본래의 이름을 관극락국토무량수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觀極樂國土無量壽佛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인데, 이것을 줄여서 관무량수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경의 이름의 내용은, 극락국토(極樂國土)의 장엄(莊嚴)과 그 나라에 계시는 무량수불(無量壽佛=아미타부처님)과, 좌우에서 부처님을 보좌하고 계시는 관음·세지(觀音.勢至)의 양대 보살을 <관(觀)>하는 경이라는 말이다. <관(觀)>한다고 하는 말에는 <관견(觀見)>과 <관지(觀知)>의 2 가지 뜻이 있다. <관견>이란, 극락 정토의 아름답고도 불가사의한 장엄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을 말하며, <관지>란,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하는 절대 신심을 말한다.

왕사성의 비극이라고 불리어지는 연유는, 이 경의 첫 머리에 태자 아자타사트루가 그 아버지를 가두고 어머니마저 가두어 버리고, 감옥에 갇힌 어머니가 부처님을 부르는 장면이, 현대에도 있을 수 있는 비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아자타사트루가 그런 끔찍한 사건을 왜 일으켰는지에 대하여 경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먼저 그런 비극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보도록 하자. 이 부분은 아자사세왕국경을 비롯하여 여러 경전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발췌(拔萃)하도록 하자.

마가다국의 왕인 빔비사라왕은 어진 정치를 펴고 국민의 절대적인 신망을 받고 있는 왕이었다. 부처님께 귀의하여 항상 진리에 접하였으며, 곁에는 언제나 아름답고 총명한 왕비 위제희(韋提希,Vaidehi) 부인이 있었다. 이 세상에 행복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단 한 가지 나이가 이미 50 줄에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슬하에 아들이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점치는 사람을 불러 점을 치게 하였더니, 안심하십시오. 반드시 왕자를 얻게 됩니다. 저 건너 산에서 수행하고 있는 선인(仙人)이 있는데, 그 선인이 수명이 다 하면 부인의 몸에 왕자로 잉태될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3년 후의 일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2 사람은 대단히 기뻐하였지만, 그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앞으로 3년이나 지나야 한다는데, 그것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더구나 더 다급한 것은 부인이었다. 이미 40이 넘은 여성으로서 도저히 3년을 더 기다릴 수는 없었다. 여러 모로 생각한 끝에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3년 후에 아이를 갖게 된다는 것은 선인이 앞으로 3년을 더 산다고 하는 말이지요. 그 말은 바꿔 말해서 그 선인이 죽기만 하면 곧 태자로 태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선인도 나이 들어 그렇게 서글프게 사는 것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태자로 태어나는 편이 훨씬 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왕은 곧 사신을 보내서 그 선인을 죽였다. 그러나 아무리 선인이라고 하더라도 목숨이 아깝지 않는 사람은 없다. 죽음에 임해서 그 선인은 원한을 품고 반드시 2 사람에게 원수를 갚을 것을 다짐하였다. v 그런 저런 일이 있은 다음 달에 부인은 아이를 갖게 되었다. 위제희 부인이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소식은 금방 온 성안에 퍼졌다. 왕을 비롯하여 모든 국민이 기뻐하였으며,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이윽고 해산달이 닥아오자 왕은 다시 점을 치도록 하였다. 점치는 사람은 점괘를 보고는 안색을 바꾸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분명히 왕자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 아이는 2 분을 몹시 원망하고 있으며, 성인이 된 다음에 반드시 2 분에게 복수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과 왕비는 매우 두려워하였다. 잔인하게도 자기네의 행복을 위해 무고한 선인을 죽인 일이 있으며, 그 선인이 죽음에 임해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 것이었다. 그로부터는 매일 밤마다 그 선인이 꿈에 나타나서는 무서운 형상을 하고서 복수하겠다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왕과 왕비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무서운 계획을 세웠다. 산실(産室)을 높은 누각에 마련하고 그 밑에 칼을 빽빽이 세우고서 아이를 낳아 떨어뜨렸다. 참으로 끔찍한 일을 실천에 옮긴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죽지 않았다. 새끼손가락 하나만 잘리고 기적적으로 살았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그 울음소리를 들은 왕비는 모성이 살아나 그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왕은 이 아이의 이름을 아자타사트루(未生怨=태어나기 이전부터 원한을 가졌다는 뜻)라고 지어 주었다. 아이는 예쁘게 자랐으며, 어느덧 왕도 왕비도 끔찍한 일들은 말끔히 잊어 버렸다. 태자는 어엿한 성인이 되도록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성인이 된 태자는 총명하였으며, 부모를 존경하고 따랐다.

여기에 조달(調達=提婆達多, Devadatta)이 등장한다. 조달은 붓다의 사촌 동생이며, 뛰어난 수행자였다. 그러나 붓다의 교단을 탐내고 분열을 조장했던 악인이다.

그가 아자타사트루 태자를 현혹시키고, 과거에 두 번이나 자신을 죽이고, 죽이려 하였던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종용하였다. 그래서 태자는 부왕인 빔비사라를 감옥에 가두어 죽게 하고, 왕을 살리려고 애쓰는 그의 어머니 마저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 관무량수경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자기의 잘못은 깊이 뉘우치지 못하고, 순전히 남의 탓만 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여성-위제희(韋提希) 부인을 통해서, 불교의 깊은 신앙의 세계를 열어 보인 경전이 바로 이 관무량수경이다. 이 경전의 특징은 크게 2 가지를 들 수 있는데, 그 첫 째는, 악인을 구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란, 진실을 구하면서도 진실과 거리가 멀고, 선(善)을 가까이 하려 하지만 선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과 공간에서, 죄업이 막중한 범부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의 욕망을 성취시키기 위하여는 수행중인 선인(仙人)마저도 죽일 수 있고, 또 자기의 명예와 안락을 위해서는 자식마저 죽일 수 있는 그런 최저, 최하의 악인(惡人) 범부(凡夫)이기는 하지만, 현실 생활 가운데서는 왕비라고 하는 최고의 지위에 있는 위제희 부인이 바로 그런 악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악인이야말로 아미타 붓다의 구제대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여인성불(女人成佛)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예를 들면, 원효의 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에서는 당시 중국의 담란이나 혜원을 비롯해서 많은 사상가들에 의해서 제기된 위제희부인의 성불론을 결론지어서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리고 있다.

여성(女性)은 왕생하지 못하지만 여인(女人)은 왕생할 수 있다. 그것은, 악성(惡性)은 왕생할 수 없지만 악인(惡人)의 왕생을 부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3) 아미타경(阿彌陀經)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은 5 세기초에 구마라집이 번역하였다. 그 밖에도 현장이 650 년에 번역한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佛攝受經) 1권이 있다. 산스크리트 원전과 티베트어 번역 본도 현존한다. 산스크리트 원전은 앞에서 소개했던 영국의 종교학자 막스뮐러와 난조오붕유우(南條文雄)이 공동 출판한 교정본이 1883년에 발표되었다. 산스크리트 원전은 불설아미타경과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유포되어 알려진 것도 이 아미타경이다.

아미타경은 극락정토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공덕장엄(功德莊嚴)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공덕장엄은 국토, 의복, 음식, 그리고 육체나 정신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렇게 공덕장엄을 널리 설하는 이유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원요(願樂)라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중생의 업인 작은 선근(善根)으로는 왕생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하루 내지 이레 동안 염불한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생이 이것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동서남북과 상하의 육방(六方)의 항하사제불(恒河沙諸佛= 갠지스강가의 모래알만큼 많은 부처님)이 광장설(廣長舌)을 내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두루 덮으면서 증명하고 있으며,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석존을 향하여, 매우 하기 어려운 일을 하셨다고 찬탄하고있음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 부분을 선도(善導)대사는 다음과 같이 단언하고 있다.

이 증명에 의해 중생이 왕생할 수 없다면 육방여래(六方如來)의 광장설은 한번 입에서 나온 다음에 다시는 입으로 돌아오지 않아 그 혀는 썩어 버릴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자신에 찬 믿음의 선언인가를 알 수 있는 말이다. 바꿔말해서, 왕생극락을 의심하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되며, 왕생극락을 믿는 것은 아미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은 석존(釋尊=샤카무니)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아미타경은 믿음에 관해서 많은 시사를 하고 있지만,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증명이 클라이맥스가 된다. 이 5탁악세에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일체세간난신지법(一切世間難信之法)을 설하는 것은 심난희유(甚難希有)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은 매우 어렵고도 있기 어려운 일을 석존께서는 하셨고, 이 일은 6방제불(六方諸佛)마저도 찬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본원의 힘[本願力]에 근거하고 있음을 신지(信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미타경은 구회일처(俱會一處)의 사상을 가지고 화합정신을 도모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마침내는 극락정토에서 모두 함께 만남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매우 깊은 사색이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2. 정토사상의 사상적 근거

불교의 실천이라고 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찰할 때 그 대상이 되는 과제는 선(禪)과 염불이다. 염불에 대한 관념은 우리 나라에 있어서 신라의 원효에게까지 소급되는데, 그 사상적인 전개는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원효법위(法位)경흥(憬興)법일(法一)의적(義寂)등이 지은 일련의

정토계전적(淨土系典籍)을 통하여 살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신라 말에 들어온 선(禪)의 관념이 9산선문(九山禪門)을 형성하고 고려말에 임제종(臨濟宗)의 종지(宗旨)를 계승한 보조태고(普照 太古)의 조계종(曹溪宗)이 그 극성을 이룬데 반하여 염불은 끝내 종파를 이루지 못하고, 고려시대에 있어서는 독립된 전적(典籍)마저 단 1권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굳이 찾는다면 선사(禪師)들의 전적 가운데서 간혹 비난과 비판을 전제로 하여 이야기되어지거나, 천태(天台)나 밀교의 전적에서 부수적인 실천항목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을 따름이다.

신라에서는 귀족불교,호국불교로서 군림했던 불교가, 원효 이후에는 정토신앙이 보급되었으며, 이 정토사상이 일반 서민에게까지 이르는 대중불교,신앙불교로서 신라왕조와 신라인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중불교,신앙불교의 구체적인 전개양상은 원효가 소승계율을 버리고 대승보살의 길을 선택한 데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대승보살의 길이란 보살의 원(願)과 행(行)이 일치되는 실천을 뜻하며, 그것은 절대적인 신앙을 통한 중생구제가 첫째 요건이 된다. 그것은 원효가 많은 저술에서 중시하고 있는 일심(一心)이, 단지 관념의 세계가 아닌, 중생구제라는 실천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신앙심의 발로라고 하는 점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바꿔말해서, 신앙을 통한 가치관 설정이 가능한 종교로서의 불교, 그것이 대중불교이며, 신앙불교이며, 정토신앙인 것이다. 정토신앙은 신라가 가장 바라던 이상국가 ― 불국토건설(佛國土建設)을 가능케 하였으며, 후대에도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남겼다.

정토신앙이 이와 같이 신라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지만, 고려왕조에서는 무슨 연유로 독립된 전적(典籍)마저 남기지 못하고 다른 종파의 부수적인 실천항목이거나, 혹은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지 조차 검토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현대의 한국불교가 놓인 위상이 보조태고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원효의 대승불교적인 회심(廻心)이 신앙적으로도 교리적으로도 계승되어 이해되어지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⑴ 대승불교의 기점

불교란 붓다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통해서 모든 중생이 붓다임을 자각할 수 있는 길이 제시된 종교이다. 붓다임을 자각한다는 것은 성불(成佛)을 의미한다. 불교가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데에는 아무런 이견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고 하는 데에는 많은 이견이 제시되며, 또 많은 의미의 해석이 가능하여진다. 다시 말해서, 성불이란 인간 고타마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모든 인간이 ‘깨달음을 성취한자’(覺者, Buddha, 佛陀)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의 사상적인 시원(始源)임과 동시에 궁극적인 목표이다.

특히 대승불교에 있어서는 성불이 의미하는 바가 단지 형이상학적인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구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데에 중점을 두고 관찰할 때 대승의 의의가 더욱 명백하여진다. 다시 말해서, 성불이란 붓다의 과거인행시(過去因行時)로부터 현세(現世)의 수하성도(樹下成道)에 이르기까지 난행·고행(難行苦行)이 논리적으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수하성도(樹下成道)에서 녹원설법(鹿苑說法)으로 옮겨가게 되는 대승적인 전회(轉廻)를 통해서 얻어지는 무상등정각(無上等正覺)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성도한 붓다(Buddha)에서 설법하는 여래(如來,Tath?gata)로 이어지는 대전회(大轉廻)로 설명되어진다. 용수(龍樹)가 중론(中論)의 귀경게(歸敬偈)에서 귀의(歸依)의 대상으로 삼았던 희론(戱論)을 적멸(寂滅)시키는 길상(吉祥)한 연기(緣起)를 가르치신 정각자(正覺者), 가장 수승(殊勝)하신 설법자가 바로 그 여래인 것이다. 불교의 입신(入信)은 귀의삼보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앞에서 용수가 하였던 연기(緣起)를 설하신 붓다에 귀명(歸命)?하는 것으로서 성립되어진다.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이루는 것’ 수하성도(樹下成道)만으로끝난다면 거기에는 단지 독각(獨覺, Pratyeka-buddha=緣覺)만이 존재하게 되지만, 설법하는 여래(如來)는 곧 설하신 법(法)과, 그 법을 듣는 제자를 그 안에 포함하게 되니 저절로 3보(三寶)를 갖추게 되어 귀의3보(歸依三寶)를 성립시키게 된다고 하는 말이다.

여래(如來)라는 말은 대승불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래란 범어 tathgata를 번역한 것으로서 여래(如來)?(tath+gata)와 여거(如去)(tath+gata)의 2 가지 뜻으로 설명되고 있다.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1권 에서는 여(如)란 이름하여 실(實)이라고 한다. 래(來)란 이름하여 지(至)라고 한다. 진실(眞實)가운데에 이르기 때문에 이름하여 여래(如來)라고 한다라고 서술하면서 진실을 10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여래를 의도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 다음에 이어서 진실 중에 가서 돌아오지 않기(如去不還)때문에 如去라고 이름한다라고 하는 표현은 여거(如去)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 2권 에 법상(法相)처럼 알고 법상처럼 설한다. 모든 부처님(諸佛)이 안온도(安穩道)에서 오는 것처럼, 불(佛)도 또한 이와 같이 와서 다시 후유(後有)가운데로 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Tathgata)라고 이름한다고 여래/여거의 두 가지 의미를 설명하고 있으며, 다시 권 55에서도 거의 같은 뜻으로 여래를 정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여래란 진여(眞如)가 래지(來至)했다고 해석할 수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다시 모든 중생이 여래의 덕상(德相)을 구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중생이 모르기 때문에 법을 설하여 가르침을 펴게 되는 필연적인 여래의 불가사의묘용(不可思議妙用)에 대한 요청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체중생이 모두 여래의 덕상(德相)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 그대로의 상태로 곧 ?성불?하는 것은 아니다. 유마경(維摩經)?을 비롯한 많은 대승경전에서 사바즉정토(娑婆卽淨土)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진여(眞如)의 세계는 중생을 떠나서 있을 수 없으며, 중생은 곧 각자(覺者=佛陀)인 것이다. 동시에 중생은 중생인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중생이 성불할 수 있는 근거는 붓다가 설법하신 교법(敎法)에 있는 것이지 중생의 지해(知解)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여래의 금구성언(金口聖言)에 대한 믿음이 먼저이며, 성불에 대한 지해(知解)는 모두 교법(敎法)에 의거해서 성립되는 분별지(分別智)이기 때문에 모두 기사(棄捨)하여야 하며 오직 여래의 무한한 자비에 포용(包容)되는 것만이 곧 성불의 길인 것이다.

설법에 의해서 모든 중생이 구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일체중생의 요청이며, 그 요청을 무시해서 붓다가 ‘보리수 밑에서 도를 이루는 것’(樹下成道)만으로 끝나 버린다면 그것은 소승의 깨달음에 지나지 않는 독각(獨覺,Pratyeka-buddha)인 것이다. 붓다가 소승의 범주를 벗어나서 녹야원으로 나아가게 된 전기가 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설법으로까지 이끈 힘이 본원(本願)이며 보살행(菩薩行)인 것이다. 이 발보리심→보살행으로 연결되는 방정식이 바로 대승의 기점이 되는 것이다.

(2) 정토사상의 근거

1) 구제의 기연

여래가 이 세계에 출현하는 것은 여래의 자비의 현현(顯現)이며, 그 목적은 중생제도에 있다. 중생의 성불의 근거가 중생에 있으면서 중생에 있지 않은 연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중생의 성불의 근거가 설령 중생에 있을지라도 여래의 본원, 즉 여래의 자비심에 의하지 않고서는 성불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나내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법(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여래를 본다?는 유명한 말은 대승과 소승의 여러 경전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여래의 본질은 법(法)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는 여래의 법신(法身)은 상주(常住)하며 불멸이다라는 의미가 살아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제행무상제법무아등의 불교의 근본교리가 열반경의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든가, 법화경의 상재영취산(常在靈鷲山) 등의 영원상(永遠相)과 대립되는 것이지만, 여래의 본질이 법(法)이 될 때에 그 대립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론화된 것이 법신(法身)이다.

여래가 진여(眞如)이며 법신이며, 상주불멸(常住不滅)하다는 것은 많은 대승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상주불멸의 법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며, 우리의 분별지(分別智)로서는 인식될 수 없는 무위(無爲)의 존재이다. 그것은 불가득(不可得)이며, 상(相)이 없으며, 설(說)할 수도 없으며, 념(念)할 수도 없다. 그러나 법신의 방편의 상(相)으로서 중생에게 상주불멸의 법상(法相)을 보이고자 하는 자비의 묘용(妙用)이 바로 붓다이며, 시방삼세불(十方三世佛)인 것이다. 그것을 불가사의묘용(不可思議妙用)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현재라고 하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된 범위 안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행동하고 있다. 인간의 가치는 언제나 현재라고 하는 시대상을 통해서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선과 악이 그것이다. 그것은 다시 현재의 나의 행동에서 분별되지만 나의 생활 속에서는 보수적인 의미의 가치체계가 형성된다. 현재라는 시대상을 통해서 나의 행동은, 혁신적이며 고답적인 가치체계가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양상을 드러내지만, 그것은 오히려 부자유를 초래하고 만다. 아비달마(阿毘達磨)불교를 구축(構築)한 출가비구들이 그랬으며, 3독번뇌(三毒煩惱)를 떨쳐 버리려고 몸부림치면서 더욱 3독번뇌 속에 빠져들게되는 위제희부인(韋提希夫人)이 그랬다. 자유를 추구한 기연(機緣)을 따라 쫓아서 가다 보면 거기에는 부자유라고 하는 올가미가 기다리게 마련인 것이다.

현재라는 시대상에 비치는 나의 생활은 무수한 가치의 엄습으로 인해 자기중심적인 보수적 가치체계를 지향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와 문화, 사회 가운데에서 수용과 반발을 통해서 안온(安穩)을 추구하게 되지만, 3독번뇌 속에 안온함이란 없는 것임을 깨달아 알뿐이다. 거기에서 시대적인 불안과 좌절이 대두하여 나의 괴로움이 형성된다.

그 괴로움을 벗어나고자 할 때, 하나의 가치지향이 나타난다. 괴로움이 깊으면 깊을 수록 그것은 전일(專一)한 것으로 응결된다. 바로 이때에 구제(救濟)의 기연(機緣)이 성립되는 것이다. 마치 열반경 범행품(梵行品)에서 반열반(般涅槃)을 앞둔 붓다가, 오직 아자타삿투(阿?世)왕의 이고득락(離苦得樂)만을 위하여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여래의 본질은 무한한 지혜와 무한한 자비에 있다. 여래의 자비를 감득(感得)할 수 있는 기연(機緣)은, 현재라고 하는 시대의 제한 속에서 3독번뇌를 각지(覺知)하는 데에 있다. 바꿔말하자면, 여래의 구제하겠다는 자비와 중생의 구제 받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함이 만남을 가질 때에 구제의 기연은 성립하는 것이다. 이때의 자비의 근거는 원(願)으로서 나타난다. 여래는 모두가 다 보살인행시(菩薩因行時)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발원(發願)하였으며, 그 원이 원만성취(圓滿成就)되어서 불과(佛果)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48원, 약사여래(藥師如來)의 12원, 보현보살(普賢菩薩)의 10원(願) 등이 그것이다. 한편 중생이 발원(發願)하는 수도 있다. 중생의 원은 탐진치의 삼독번뇌의 제약 가운데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래의 원과는 구별된다. 그것은 원을 받치는 역용(力用)이 자비로서 불가사의하게 회향(廻向)할 수 있는가의 가부(可否)에 달려 있다. 여래의 그것은 원행만족(願行滿足),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각각타·각행궁만(自覺覺他·覺行窮滿)인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여래의 원을 본원(本願)?(宿願)이라고 한다.

여래의 본원과 중생의 원이 만남을 가질 때 비로소 구제의 기연(機緣)은 성립하게 된다. 이 때의 중생의 원이란 시간과 공간의 제약가운데에서 탐진치의 삼독번뇌에 허덕이지 않을 수 없는 범부의 자각이다. 중생이 스스로 깨달아 아는 계기는 물론 여래의 교법(敎法)에 대한 문법(聞法)과 절대적인 믿음에 의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2) 정토왕생의 사상적 근거

인간이 행복해지고 싶다. 자유를 획득하고 싶다고 하는 바램(願)은 근원적인 것이며 순수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바램이 성취될 수 없는 상태의 어리석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진실한 의미의 행복과 자유란 시간과 공간의의 제한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떠나서는 사유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3독번뇌(三毒煩惱)에서 헤아날 길이 없는 인간존재가 내 자신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하여 무한히 묻고(問) 묻는 과정에서 생기는 절망과 좌절은 결국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를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다. ?무량수경?의 앞 부분에서는 그 과정마저도 여래의 위력(威力)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무량수경?에서 아난다가 붓다께서 5종의 서상(瑞相)이 현현(顯現)함을 밝혔고, 붓다도 그것을 긍정하지만, 그 뒤에 여래의 출세(出世)의 의의와, 자비와 지혜의 무한함을 강조한 다음에 아래와 같이 여래의 위력을 표현하고 있다.

여래에게 그 뜻을 묻고자 하였던 그것도 실은 여래의 뜻[여래의 위력(威力]인 것이다. 이것은 아난다(Ananda)라고 인간의 지혜로움은 아난다라는 인간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여래의 뜻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고뇌를 통해서 묻고 묻는 과정마저 자력으로 비롯됨이 아니라고 부정되어진다면,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여래의 위력에 의지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여래의 위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아난다를 위하여 법장보살의 발원(發願)과 수행을 전개하여 가는 것이 바로 무량수경인 것이다. 앞에서 아난다는 자기자신의 지혜로움을 앞세우다가 좌절했지만, 법장보살은 결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는다. 법장보살은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앞에서 불국청정장엄무량묘토(佛國淸淨莊嚴無量妙土)를 가르쳐 보여 줄 것을 간절하게 말씀 드리자, 여래는 네 스스로도 잘 알텐데 왜 묻느냐라고 하였고, 법장보살은 제가 알 수 있는 경계(境界)가 아니니 바라옵건데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스스로 어리석은 인간임을 여실(如實)하게 밝혔다. 바로 이것이 구제(救濟)의 기연(機緣)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48원은 이러한 구제의 기연, 바꿔말해서 정토왕생의 기연의 현현(顯現)이며 여래대비심(如來大悲心)의 발로이다.

법장보살은 5겁(劫)동안 사유하고 발원(發願)하였으며, 그 원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불가사의조재영겁(不可思議兆載永劫) 동안의 무량덕행(無量德行)을 적식(積植)하였다. 그리고 성취하였다. 성취한 원(願)은 세상을 초월한 원이며, 그것은 대비의 원이다. 무량수경의 중서게(重誓偈)의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내 세상을 초월한 원을 세워 반드시 무상도(無上道)에 이르리라.

이 원이 원만구족(圓滿具足)되지 않는다면 맹세코 정각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내 무량겁(無量劫)을 통하여 대시주(大施主)가 되어서 두루 모든 가난한 자를 구제하지 못한다면 맹세코 정각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내가 불도를 성취함에 이르러 그 명성이 시방을 넘어 서리라. 마침내 듣지 못하는 곳이 있다면 맹세코 정각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그 앞에서 서술한 48원의 내용에 대한 면밀한 재확인이다.

48원은 모두가 설령 내가 붓다가 되더라도(設我得佛), ··· 정각을 이루지않으리라(不取正覺) 이라는 정형(定型)의 게송(偈頌)으로 되어 있다. 설아득불 이하의 문장은 원(願)이며, 취정각은 서(誓)이다. 법장보살은 정각(正覺)을 이루었고, 그의 48원은 성취되었다. 이런 일련의 사실을 확신할 때에 극락은 눈앞에 있는 것이다.

미타의 본원을 진실로 받아 들이고 믿고 신앙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무량수경에서는 그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여 잊지아니하는 것은 어려움 중의 어려움이요, 이 어려움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아미타경에서도 이 법(法)을 믿기란 지극히 어렵다고 하였다. 여래가 세상에 나타 날 때(出世)에 같은 세상에 나 역시 나기(出世) 어렵고, 여래를 보기도 어려우며, 모든 부처님의(諸佛)의 진실한 가르침(經道)은 듣기 어렵다(難得難聞). 또 보살의 가장 뛰어난(殊勝) 법·모든 바라밀(波羅蜜)도 또한 듣기 어렵다. 선지식(善知識)을 만나 법을 듣고(聞法) 실천하는 것 또한 어려운 것이다 그런 어려운 가운데서 믿고 신앙한다는 종교심의 발로를 재촉하고, 그 근거를 본원(本願)은 제시해 주고 있다.

본원사상은 붓다에 의해서 자각된 자비와 지혜가 바탕이 된 여래의 대비심(大悲心)이 아미타불의 본원이라는 구체적인 모양을 갖추고 표현된 것이다. 그것이 여래의 대비심의 발로라고 한다면, 인간은 단지 여래의 본원에 의지하기만 하면 구제되는 것이다. 여기서 구제되는 인(因)마저도 중생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래에게 있는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그것을 원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릇 왕생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힘으로> 능히 그 정보장엄(正報莊嚴)을 감득(感得)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며, 또한 그 의보정토(依報淨土)를 감득(感得)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여래의 본원력(本願力)의 <능동적인 묘용(妙用)으로> 인하여 비로소 수감수용(隨感受用)되는 것이다. <결코> 자업인력(自業因力)으로 성취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無量壽經宗要) 본원이란 중생이 좌절의 밑바탕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순수생명이며 절대가치이다. 진리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는 중생이, 그를 섭취불사(攝取不捨)하겠다는 여래의 본원(=약속)을 믿고 의지할 때에, 거기에 본원의 의의는 뚜렷이 나타나는 것이며, 정토왕생의 근거도 명시되어지는 것이다.

이상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대승불교사상은 바로 정토사상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